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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bo Sangsa Professional Printing Service
한국 인쇄산업의 역사: 해방부터 현대까지
1. 해방과 인쇄업계
(1) 해방 직후의 인쇄업계
인쇄업계는 글 즉, 활자를 모체로 하는 업종의 특성상 '40년대 들어 일제의 우리 글 말살 정책으로 크나큰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해방 당시 각 인쇄소에는 한글 활자가 거의 소멸되고 없었다. 따라서 해방으로 우리 글을 되찾게 된 인쇄인들은 남다른 기대를 안고 새 출발을 하게 되었으며, 경향 각지의 인쇄소들은 한글 활자를 구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당시는 대부분의 인쇄소들이 전태자모(電胎字母)와 경편자모(輕便字母) 활자를 활판소에서 구입하여 사용하였음에도 전국에 수동 주조기가 겨우 10여 대에 불과해 인쇄소들이 한글 활자를 완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미군은 38도선 이남에서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서울 만리동에 위치한 조선인쇄주식회사를 접수하였다. 이것은 적산으로서 미 군정청이 가장 먼저 접수한 인쇄 시설이었다. 언론 출판의 기능을 중시한 그들은 군정의 시책을 대중들에게 보다 잘 알리기 위해 대규모의 인쇄 시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접수된 조선인쇄는 훗날 정부 직영 공보처 인쇄공장인 대한인쇄공사로 개편되었다가 민간에게 불하되었다.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적산 귀속 사업체로 남아있던 인쇄소는 서울 30, 경기 4, 강원 1, 충북 3, 충남 4, 전북 9, 전남 5, 경북 13, 경남 15개 업체 등 총 84개 업체였으며, 인쇄 관련 업체로는 서울에 제본 2, 공책 제조 2, 경북에 제본 1, 경남에 제본 1, 인쇄 재료 1개 업체였다.
(2) 인쇄업계의 어려움
해방 직후의 사회적인 혼란, 기술 인력과 원부자재의 부족 등 어려운 경영 여건 속에서도 해방과 더불어 우리말과 우리 글을 되찾게 되자 국한문 서적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되었고 통치 기구의 개편으로 행정 서식을 비롯한 각종 인쇄물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에 인쇄업체는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었던 활자와 인쇄 잉크 등 몇몇 인쇄 자재는 품질이 낮은 데다가 공급마저 달렸고, 특히 일제 말엽부터 악화되었던 인쇄용지 난은 폭발적인 수요 팽창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인쇄용지 생산 공장은 일제 때부터 가동되었던 군산의 북선제지화학 1개소뿐이었으며, 이 공장의 생산 능력은 월 평균 600톤에 불과하였다. 그나마 해방 후 상당 기간 운휴 되었다가 가동하기 시작하였으며, 북한에서의 펄프 공급이 중단되면서 원료 확보마저 어려워 생산된 용지는 대부분 가장 시급했던 교과서용으로만 쓰였다.
그 전까지는 신의주에 있던 왕자제지에서 생산된 인쇄용지의 상당량이 내려왔는데, 1946년 5월 23일을 기해 그 동안 자유로이 내왕하던 38선의 왕래가 금지되자 북한으로부터의 용지 공급이 그치게 되어 인쇄용지 난을 더욱 가중시켰다. 인쇄용지 사정이 심각해지자 마카오 등지에서 밀수입하는 경우도 생겨났으나, 용지의 정식 수입은 보다 시급한 식량 문제 등이 산적해 있어 순조롭지 못했다.
여기에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전력난이었다. 당시에 남한은 전체 전력 수요량의 42% 정도를 북한의 송전에 의지하는 형편이었다. 인쇄업계는 용지 난과 전력난 외에도 기술자가 태부족하여 공장을 가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큰 인쇄사의 경우 기술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일본인들이 철수하자 큰 인쇄 시설은 가동할 수조차 없었다.
(3) 인쇄업계의 현황
해방 이후 종업원 5명 이상의 인쇄 및 제본 업체는 1946년에 221업체에 종업원 4,540명, 1947년에는 236업체에 4,567명, 1948년에는 228업체에 6,236명이 되었다. 1948년 현재 인쇄 및 제본 업체 중 비교적 큰 11개 업체에는 2,303명의 종업원이 종사했으며, 이들 업체의 당해 연도 생산액은 16억 2,026만 원이었다. 이는 업계 전체 생산액의 3.1%에 불과한 것으로 1940년도의 23.1%에 비하면 그 비중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군소 업체들이 많이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1월 현재 종업원 규모별 인쇄 업체 수를 보면 전체 228개 업체 중 5∼9명이 70개, 10∼14명이 68개, 15∼19명이 21개 업체로서 5∼19명의 업체가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100∼149명이 6개, 150∼199명이 2개, 200∼249명이 2개, 600∼699명이 1개 업체였다.
2. 인쇄업계의 시련과 극복
(1) 6·25 동란과 인쇄업계
1) 인쇄업계의 피해
해방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는 자구 노력을 통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던 인쇄업계도 여타 업계들과 같이 재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서울에 있는 인쇄 시설은 70% 이상이 파괴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많은 인쇄소들이 전화 속에서도 파손되지 않고 남아 있던 인쇄 시설들을 앞다투어 피난지인 대구와 부산 등지로 소개(疏開)시켰다. 그리하여 서울에 있었던 전체 인쇄 시설의 3분의 1 정도가 대구와 부산 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2) 6·25 동란 중의 인쇄
1·4 후퇴 이후 1953년 서울이 수복되어 피난 갔던 인쇄소들이 서울로 복귀할 때까지 국내 인쇄는 주로 부산과 대구 지역에서 현지 인쇄소들과 피난 인쇄소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전체 인쇄물은 활판 인쇄가 80%, 석판 및 오프셋 인쇄가 20% 정도여서 활판 인쇄가 주종을 이루었다. 대한교과서는 1951년 3월 문교부가 새로운 학제를 실시함에 따라 각급 학교 교과서를 신규 발행하게 되었다. 동란은 인쇄업계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지만 피난지로 소개시켰던 잔여 인쇄 시설 소유 업체나 부산, 대구 지역의 인쇄 업체 그리고 신규 창업된 업체들은 일시적이나마 국한된 시설로 철야 작업을 계속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일거리로 인해 문자 그대로 황금시대를 구가하는 전쟁 특수를 누릴 수 있었다.
3) 휴전과 재건 노력
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점차 안정되어가자 출판사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1950년에 106개 사이던 출판사가 1955년에는 645개로 늘어나면서 난립 현상까지 보였다. 그러나 전후 복구의 어려움으로 도서 구매력이 급격히 감소되면서 서점들이 연이어 쓰러지고 그 영향이 출판계를 거쳐 인쇄 관련 업계에까지 미쳤다. 어려움 속에서도 인쇄업계는 시설 교체와 경영 쇄신 등으로 경영난을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러한 결과 벤톤 조각기를 비롯한 근대식 시설 도입이 폭넓게 이루어져 노후 시설을 교체해 나갔다.
이 무렵에 수입된 인쇄 기자재의 70% 정도는 일제이고 나머지 30%는 서독 및 유럽 제품이었다. 피난 시절부터 1956년까지 도입된 인쇄 기자재는 전국적으로 약 318만 달러어치였는데, 이중 40% 정도는 관공서 및 공공 기관의 시설이었고 60%는 민간 인쇄 업체와 제본 업체의 기자재였다. 인쇄 업체에서 도입한 기자재 중 가장 많이 도입된 것이 활판 인쇄 기자재였고, 다음이 컬러 인쇄를 위한 오프셋 인쇄기, 동판 인쇄기, 제판 시설 등이며, 이밖에 제본 및 특수 인쇄 시설도 도입되었다. 6·25 동란 이후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고 재건하기 위해 각 인쇄소마다 시설 교체 및 기자재 도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종전의 활판 위주의 인쇄에서 벗어나 점차 오프셋 인쇄의 컬러 인쇄를 지향함으로서 인쇄 기술 발전에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인쇄와 관련된 각 분야에서도 해외 선진 기술을 활발히 도입하고 기술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결과 활판 부문에서는 활자가 읽기 좋고 보기 좋도록 개량되고, 지형(紙型)의 제작 방법은 습식에서 건식으로 바뀌었으며, 활판 인쇄기와 주조기 등은 수동에서 자동으로 그리고 소형에서 대형으로 변하였다. 오프셋 인쇄 부문 또한 다색도화 추세에 따라 종전의 묘판(描版)제판에서 사진제판으로 발전되고, 원색의 인쇄 효과를 높이기 위한 동판 인쇄술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2) 인쇄 기술의 발전
1) 활자 개량 작업
1954년 4월 이임풍이 디자인하고 박정래가 제도한 자모 원도에 의해 벤톤 조각기로 새로운 한글 활자를 만들었다. 이로써 종전의 호수(號數)활자 대신 벤톤 조각기에 의한 포인트 활자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인쇄사에 있어 새로운 활자체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박경서는 일찍이 조선 왕실의 활자 조각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납이나 쇠에 활자를 직접 조각하는 명인이었고, 이임풍은 당시 국립도서관의 양서 담당자로 자모의 원도 설계가 전공이었으며, 박정래는 당시 서울신문에서 자모 조각을 맡고 있었다.
여기에서 자극을 받은 각 인쇄소들도 한글 활자체를 앞다투어 개량하게 되었다. 1955년에는 동아출판사가 최정호(崔正浩)가 쓴 새로운 자모 원도로 벤톤 활자를 개발하였고, 1956년에는 평화당인쇄(주)가 박정래의 원도로, 삼화인쇄(주)가 최정호의 원도로 각각 활자를 개발하였다. 이 밖에도 대한교과서(주), 민중서관, 홍원상사(주), 광명인쇄공사, 삼성인쇄(주) 등도 활자체를 잇따라서 개량하였다. 그러나 한자의 자모는 새로운 서체의 원도를 개발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도입하여 사용했으며, 주조기 또한 일제 만년식 주조기로 교체하였다. 이와 함께 활판 인쇄기도 재래식 소형에서 최신식 대형으로 바뀌고, 지형 또한 습식에서 건식으로 교체되었다.
2) 제판 및 인쇄 기술의 발전
195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평판 인쇄는 인쇄판을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수공제판(手工製版=描版)이 대부분이었다. 일제 때 도입된 사진제판 기술은 일본인들이 독점하면서 한국인들에게 기술 전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복 당시까지도 한국인 사진제판 시설 및 기술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사진제판술을 꾸준히 연구하여 오늘날 대한미술(주)의 모태인 선만사진제판소를 설립한 이태직(李泰稙), 일본인 밑에서 사진제판술을 익혀 정연사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프로세스 카메라와 150선 스크린 등의 첨단 제판 시설을 도입한 김기봉(金基逢) 등 사진제판술 선구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뒷받침되고 각 인쇄소에서 도입한 일본, 서독제의 최신 제판 시설 등으로 인해 '50년대 말경에는 국내 사진제판술도 현저하게 발전하였다. 사진제판술의 발달과 더불어 1956년부터는 동판(銅版)인쇄에 의한 원색 인쇄가 개발되어 인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국내 최초의 동판 인쇄는 삼화인쇄소를 설립한 유기정(柳琦諪)이 일본에서 기술을 배운 전차훈(全次勳)과 손을 잡고 개발한 것인데, 이 기술은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어 당시의 원색 인쇄계를 휩쓸면서 당사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3) 신기술의 도입
유네스코와 운크라는 1954년에 문교부를 통해 국정교과서주식회사 인쇄 시설 자금을 원조하면서 시설의 도입선을 일본으로 지정하여 기술자를 일본으로 보내어 효율적인 인쇄 공장의 관리 및 운영 기법을 연수하게 하였다. 국내 최초의 순수 인쇄 기술 해외 연수자는 김영기(金永基)이다. 1957년 ICA의 기술 원조금으로 최신 사진제판법을 배우기 위하여 서독에 파견되어 6개월간 연수하고 귀국, 보진재인쇄소의 기술 향상뿐만 아니라 보고회 등을 통해 국내 사진제판 업계에 새로운 지식과 기술 보급에 기여하였다.
(3) 업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도
1) 인쇄문화 전시회 개최
국내 인쇄문화 전시회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제1회 캘린더 전시회는 1955년 2월 15일부터 6일 동안 대한인쇄협회 주최로 서울의 미국 공보원 전시장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20여 인쇄사가 36종의 인쇄물을 출품하였는데, 개관 첫날 3천 5백여 명이 참관한 것을 비롯해 매일 2천여 명이 관람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제2회 미술 인쇄 및 캘린더 전시회는 1957년 3월 14일부터 10일 동안 미국 공보원 전시장에서 열렸다. 1958년에는 종전의 캘린더 전시회를 개칭한 제3회 전국 인쇄문화 전시회가 10월 10일부터 5일 동안 동화백화점(현 신세계) 5층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에 있는 34개 인쇄사가 참여하여 다양한 인쇄물을 출품하였으며, 서적, 활자판, 각종 활자 자모, 자모 조각 원도, 금속 인쇄물, 각종 인쇄 기자재 등도 함께 전시되어 종전의 전시회보다 규모나 내용이 훨씬 크고 다양해졌다. 제4회 전국 인쇄문화 전시회는 1959년 11월 19일부터 일주일 동안 화신백화점 3층 화랑에서 열렸다. 20여 개사가 출품한 인쇄물 견본을 비롯하여 사진, 인쇄 판재, 롤러, 잉크 등 23종 63점의 자료와 18종 649점의 기자재들이 함께 전시되어 인쇄문화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였다. 특히, 미국 대외 원조 기관(USOM)에서는 고속 소형 오프셋 인쇄기와 제판 시설을 출품해 전시장에서 직접 인쇄를 실연해 보였다.
2) 국제교류의 시작
인쇄업계 최초의 국제교류는 1957년 10월 10일부터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아시아 인쇄인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한 것인데, 이때 남송학(南松鶴), 이구종(李耉鍾), 신현정(申鉉正), 유기정(柳琦諪) 등 4명이 우리나라 대표단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개최된 아시아 인쇄인 회의는 일본인쇄공업협회 주최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된 인쇄인들의 국제회의로 각국 인쇄인들 간에 기술 및 정보를 교류하는 한편, 친선 강화와 유대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개최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자유중국, 홍콩,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버마, 인도 등 11개국의 인쇄인들이 참가한 행사였다.
3. 전환기의 인쇄업계
(1) 인쇄업계의 개황
1961년 12월에는 새 정부에 의해 중소기업협동조합법과 중소기업사업조정법이 공포되고 이듬해 2월에는 시행 세칙이 마련되어 각 시도 단위로 인쇄공업협동조합 설립이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1962년 3월과 4월에는 서울특별시인쇄공업협동조합을 비롯해 전국에서 각 시도 조합이 설립되고, 4월 23일에는 각 시도 단위 조합을 총괄하는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발족됨으로서 인쇄 단체는 기존의 대한인쇄공업협회와 함께 이원화되었다.
'60년대 중반부터는 정부의 5개년 경제개발 정책에서 비롯된 공업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인쇄업계의 시설도 날로 현대화되기 시작하였다. 인쇄 시설은 재래식의 수동 방식에서 자동 방식으로 바뀌고 단색에서 다색 인쇄기로 대체되는 등 현대화 추세에 따르는 경영 합리화로 시설과 기술이 모두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을 하게 되어 '60년대 중반부터는 인쇄물 수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며, 수출 시장 확대를 위한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에 들어서는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심각한 원가 인상 압박을 받기도 하였지만 원가 절감과 경영 혁신을 위한 인쇄업계의 시설 도입과 기술 향상 노력은 부단히 계속되었다. 1978년에는 최신 인쇄 시설을 대거 도입함으로서 업계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으며, 공해 문제 해소와 도시 인구의 분산 정책으로 존립의 위기마저 겪던 도심의 인쇄소들이 도시형 업종으로 정착되어 업계의 지위 향상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최신 시설 도입이 활성화됨에 따라 기술 인력이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인쇄 기술 분야에서는 기초 지식을 갖춰야 하는데도 인쇄 교육 이수자들이 대부분 영업 관리 등 사무직을 선호하는 한편, 같은 기술직이라 하더라도 보다 나은 작업 환경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져 인쇄기를 다루는 현장 인력은 더욱 부족한 실정이었다. 또한 '70년대부터는 정부 투자 기관, 상조회 등의 비영리 단체들과 신문사, 대기업 등에서 인쇄 설비를 신설 또는 확장하여 민간 인쇄 영역을 침식함으로서 인쇄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80년대에 와서는 정보 산업 시대로 들어서면서 인쇄 기술의 향상은 물론 인쇄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지고 품질 또한 고급화되면서 인쇄 범위도 크게 확대되었다. 특히 컴퓨터의 도입으로 인쇄의 개념이 흔들릴 정도로 공정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인쇄물에 대한 기호도 종전의 대량 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화로 변하였다.
(2) 인쇄 시설 도입과 기술 발전
1) 조판 및 제판 시설의 도입
조판 분야는 활판 조판 방식에서 벗어나 사진식자를 거쳐 컴퓨터 조판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사진식자기는 독일에서 최초로 고안되었으나 이를 실용화시킨 것은 일본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가 인쇄 방식이 활판 인쇄에서 오프셋 인쇄로 전환되면서 일약 획기적인 기술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한글 자판 사진식자기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국정교과서주식회사가 1954년 12월 일제 사진식자기에 한글 자판을 붙여서 최초로 실용화시킨 재일 동포 장봉선을 통하여 도입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널리 활용되지 못하다가 1960년에 장봉선이 최정호에게 의뢰하여 작성된 한글 원도를 붙인 사진식자기를 보진재인쇄소에서 도입하면서부터 차츰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0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국산 사진식자기도 출현할 만큼 발전을 거듭하여 우리나라의 인쇄가 활판 인쇄에서 오프셋 인쇄로 전환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컴퓨터 사진식자기는 키보드 등 하드웨어만 갖추면 활자나 렌즈가 필요 없이 문자를 신속하게 입력하고 자유로이 편집할 수 있어 오늘날까지도 가장 각광받는 조판 기기이다.
제판 분야에서는 스캐너의 등장이 주목할 만한데, 고품질과 다색화가 요구되는 현대의 인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스캐너는 1950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이래 '6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과 영국, 독일 등에서도 잇따라 개발해 냈다. 스캐너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968년 광명인쇄공사와 삼화인쇄주식회사가 독일제를 도입하면서부터인데, 처음에는 1도 색분해만 가능하고 확대나 축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72년 광명인쇄공사가 2색도가 동시 분해되는 영국제를 도입한 데 이어, 동아출판사와 교학사가 4색도까지 동시 분해되는 스캐너를 도입함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제판 기술은 그 후 일반 카메라에 의한 방식에서 벗어나 '80년대 중반까지 컬러 스캐너의 일반화 과정을 거친 다음 토탈 스캐너 시대로 이행되었다. 토탈 스캐너는 초기에는 과다한 투자 비용에 비해 생산성이 낮아 일부 업체에만 설치되었으나 '90년대에 들어서는 기능 및 생산성의 향상과 투자 비용의 절감으로 경제성이 제고되어 설비 업체가 크게 늘어났다. 인쇄판 또한 '60년대 후반부터는 종전의 아연판 대신 물과 융합이 잘 되어 얼룩지는 일이 적은 데다 많은 통수를 인쇄할 수 있는 알루미늄 판이 등장하였다. 이어서 '70년대 후반부터는 알루미늄 판보다 제판 공정이 짧고 다루기가 쉬우며 원고의 재현성 또한 우수한 PS판으로 대체되었다.
2) 인쇄기의 도입
'60년대에 삼화인쇄, 평화당인쇄, 보진재, 태양당인쇄, 광명인쇄공사 등에서 서독제와 스위스제 2색 오프셋 인쇄기를 여러 대 도입하여 증설하였고, '67년에는 삼화인쇄에서 국내 최초로 4색 오프셋 인쇄기를 도입하였다. '70년대에 들어와서는 5·6색도용 오프셋 인쇄기와 8·12색도용 오프셋 윤전기까지 도입되어 시설의 현대화는 인쇄물 품질의 고급화와 생산성 향상에 많은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80년대 들어 인쇄물 품질의 고급화와 납기의 단축, 다품종 소량화 등 급격한 변화에 따라 인쇄 기술은 물론 인쇄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지면서 범위도 크게 확대되었고, 또한 인쇄물의 수요가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화로 변화됨에 따라 최첨단 시설을 갖추려는 업계의 노력도 계속되었다.
3) 인쇄 기술의 발전
문자 조판은 컴퓨터화가 진행되면서 가장 많은 발전을 하였다. 인쇄기 등은 선진국의 기술이나 설비를 그대로 도입해 사용할 수 있지만 조판 부문은 각국의 문자 체제가 달라 우리나라의 경우도 한글 전용의 조판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연구 개발해야만 했다. 국내에서는 1986년 전산 사식 시스템이 개발되어 조판 부문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전산 사식 시스템은 조판 처리가 빠르고 수정 작업과 자료 보관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를 입력기로 사용할 수 있어 설비 투자 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되면서 수동 사식 업체들이 전산 사식으로 전환하였다. 1988년에는 전산 사식기 메이커에서 신문의 전면 조판 처리까지 가능한 대조용 편집기를 개발하였으며,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진이나 도표 등도 함께 처리할 수 있는 통합대조편집 시스템까지 개발해 널리 실용화되었다. 제판 분야도 일반 카메라에 의한 방식에서 벗어나 '80년대 중반까지 컬러 스캐너의 일반화 과정을 거친 다음 토탈 스캐너 시대로 이행되었다. 또한 제판 공정에 있어서의 토탈 시스템 구성은 전자 출판의 발전과 함께 문자 입력과 컬러 스캐닝, 레이아웃, 컬러 수정 등 조판과 제판의 공정을 한 라인으로 통합시켰으며, 앞으로 전개될 화상 송수신 시대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인쇄기의 고속화와 작업 물량의 소롯트화로 작업 변화 횟수가 늘어나 인쇄기의 정지 시간과 용지의 손지율이 증가되는 경향이 많아지자 색 맞춤 작업의 자동화 체제로 잉크 공급량 자동 조절 장치가 개발되었고, 핀트 자동 맞춤 장치까지도 일반화되어 대부분의 다색 인쇄기에 표준 장비로 장착되었다.
(3) 인쇄 산업의 수출 산업화
1) 인쇄물 수출의 시작
1957년 부흥부에서 발주한 영문판《한국의 경제 백서》를 제작했는데, 인쇄물 수출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수출 신용장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인쇄물 수출을 시작한 것은 1964년 3월 삼화인쇄(주)가 일본 돗판인쇄(주)로부터《한서목록(漢書目錄)》라는 책자의 지형을 5천 달러에 수출하면서부터이다. 1965년 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베트남에 총 23만 1천여 달러 분량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였다.
2) 수출 산업 진흥 노력
정부는 1987년 인쇄업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수출 업무 주무 부서를 문공부에서 상공부로 이관하고 시설 개체 자금을 지원, 인쇄 산업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인쇄 공업 수출 산업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 방안은 우리나라 인쇄물 수출이 저조한 원인으로 중소 인쇄 업체의 사정상 수출 업무 수행 및 시장 개척 능력의 부족, 규격이 다양하지 못하고 평활도가 불균일한 인쇄용지 및 광택과 색상이 불량한 잉크 등 원부자재의 품질 미흡, 수출용 원고 필름의 통관 절차가 복잡하고 재수출 허용 기간의 연장 기간이 짧아 추가 발주를 받기가 어려운 실정 등으로 보고 이들의 개선책을 마련하였다. 정부가 인쇄를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노후 시설의 개체 및 자동화를 위한 장기 저리 자금을 지원하고, 원자재 공급의 원활화를 위한 외화 대출 지원도 병행되어야 하며, 시설의 다량 도입으로 인한 업체 간의 과당 경쟁 방지와 자금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인쇄 업체를 집단화 내지 협동화시키는 것도 육성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3) 인쇄물 수출의 성장
국내 인쇄물 수출은 업계의 꾸준한 국제 교류와 기술 향상 시장 개척 노력에 힘입어 수출 지역이 초창기의 미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벗어나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수출에 참여하는 업체와 수출 실적도 크게 증가하였다. 수출 품목 또한 전사지나 조판 지형 등 반제품을 수출했던 초기와는 달리 성경, 사전류, 아동 도서, 명화집, 교과서, 지도, 다이어리, 라벨, 앨범, 지기류 등 20여 종으로 늘어났고, '80년대에 들어서는 쇼핑백, 캘린더, 카탈로그 등 고부가가치의 고급 인쇄물 수출이 두드러지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수출 실적은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계속된 임금 상승 등에 따른 인쇄 단가의 상승으로 대외 경쟁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며, 수출 채산성 또한 약화된 탓에 참여 업체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4. 세계 속의 한국 인쇄
(1) 인쇄업계의 환경 변화
1) 인쇄 시장의 개방
정부가 마련한 '외국인 투자 및 기술 도입 활성화 방안'에 따라 오프셋 인쇄업의 경우 1996년에 외국인 지분 50% 이하에서 개방된 후 이듬해에 완전 개방되었으며, 경인쇄업과 여타 상업 인쇄업의 경우는 1997년부터 전면 개방되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중소기업 고유 업종과 도시형 업종 등으로 정책적인 보호를 받아왔던 인쇄업이 표준 산업 분류의 개정으로 외국인 투자 금지 업종에서 자유 업종으로 바뀌게 되었다. 1995년 11월 미국의 인쇄 편의점 회사인 킨코스는 서울에 체인점을 개설하고 영업 활동에 들어감으로써 국내 경인쇄물 시장에 진출하였다. 이 외에도 즉석 인쇄점 형태인 그레일 코퍼레이션과 이든타운 등 서너 개의 외국 업체가 국내에서 체인망을 설치, 영업 중이어서 심각한 물량 부족을 겪고 있는 인쇄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2) 인쇄 기술의 변화
제판 분야에서는 사진이나 화상의 표현 방식이 필름에서 자기 녹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종전까지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던 제판 작업을 컴퓨터를 이용하여 모니터상에 나타난 화면을 다양하게 변조시키거나 합성하여 빠르면서도 손쉽게 분판용 필름까지 제작해 내고 있다. 화상의 디지털화와 기억 매체의 고기능화로 원고 제작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교정 인쇄물도 제판이 완료된 것을 검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제판용 필름이 작성되기 이전에 간단하게 교정하는 방식이 실용화되었다. 특히 '80년대 들어 사진제판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DTP는 인쇄 기술의 전 부문에서 일대 혁신을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러한 컴퓨터 전자 출판 시스템은 새로운 인쇄 방식을 탄생시키는 근원이 되었다. 조판 분야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인용 컴퓨터가 차지했으며, 사진제판 카메라와 망점 촬영 부문에서는 스캐너 컴퓨터 기술이 자리를 잡았다. 이에 따라 문자나 그림, 그래픽 등을 디지털 폼으로의 표현은 물론 원색으로 직접 그리고 디지털 형식으로 만들어 내면서 인쇄판 제작과 인쇄 방식에서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기술들을 선보이고 있다.
3) 인쇄물 수요의 변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전자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인쇄물의 개념도 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종전의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화로 변하는 추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읽는 인쇄물에서 다색 중심의 보고 즐기는 인쇄물로 전환되고 있다. 또한 인쇄물의 역할이 정보의 전달이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더욱 확대되어 상품의 포장 및 가치를 높여 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은 물론 선전과 홍보의 기능 또한 더욱 중시되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인쇄물 수요 형태의 변화와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특수 인쇄가 개발되었다. 종전에는 인쇄라 하면 일반적으로 종이를 소재로 하는 것으로만 생각되어 왔으나 오늘날에는 물과 공기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소재에 인쇄가 가능할 정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특수 인쇄는 범위가 매우 세분화되고 물량도 크게 증가하면서 각종 산업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 중에는 직물 원단 등 섬유류 가공에 이용되는 스크린 인쇄, 각종 기계나 옥외 광고 설치물 등에 이용되는 금속 인쇄, 도자기 등 요업 분야의 전사 인쇄, 관광 기념품 등에 이용되는 목제품 인쇄, 식음료의 캔에 이용되는 제관 인쇄, 화장품 용기나 플라스틱 용기에 이용되는 곡면 인쇄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레이저를 이용한 홀로그램 인쇄와 전자 제품 등에 활용되는 회로 기판 인쇄, 각종 포장지 인쇄에 이용되는 그라비어 인쇄 등도 주변 산업의 발달에 따라 대중화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아직 미미하지만 선진국에서는 많이 활용되고 있는 액정 인쇄, 향기 인쇄, 발색 인쇄 등도 점차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 산업과 관련 기술의 발전도 인쇄물 수요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CD 롬 등 전자 출판물이 사전류와 어학용 교재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을 보여 책자류 인쇄물의 영역이 침식당하고 있으며, 예금 통장과 도장이 없이도 카드 한 장으로 모든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는 전자 통장이 이미 활용되고 있고,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의료보험 등의 개인 신상 자료를 하나에 담은 전자 카드 출현이 예시되고 있어 각종 서식류 인쇄물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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